중세

Posted at 2012/04/29 16:35// Posted in 하우통신
중세는 왜 암흑의 시대인가? 다른 생각, 다른 삶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죽어야 했다. 불신하는 자만 죽어야 했던 게 아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어야 했고 심지어 믿는 방식이 달라도 죽어야 했다.

중세 사람들은 무지했는가? 그렇지만은 않다. 수많은 학자들이 평생을 학문에 용맹정진한 시기가 또한 중세 시대이다. 당시의 학자들은 하루 온종일 학문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신념에 따라 연구하고 그 신념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그리고 그 신의 이름으로 기꺼이 죽이거나 기꺼이 죽었다.

최근 며칠 사이 두 번 전철을 탔다. 그런데 두 번 다 '이명박 개새끼'를 큰소리로 부르대며 쉬지 않고 악다구니하는 사람을 봤다. 물론 둘은 각기 다른 사람이었다. '이명박 개새끼'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면서 전철의 이 칸 저 칸을 오가며 목소리가 잠기도록 소리를 질러대던, 며칠 전에 본 이는 자신을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목사라고 소개했다. 반면에 '이명박 개새끼'를 총으로 쏴죽여야 한다고 몇 십 분을 그렇게 외치던, 어제 본 이는 이명박이 자기가 낸 세금을 도둑질을 했다고 앉은 자리에서 고래고래 악을 써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사람들은 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고요한 건 전철 안의 반응만이 아니다. '2호선 OO녀' 분당선 XX녀' ... 따위, 잊혀질만 하면 인터넷의 검색 1순위에 오르곤 하는 사건에 비해 재미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덜 중요해서일까? 저 정도 고함을 지르고 하면, '무슨무슨 녀' 하며 인터넷에 찍어올리는 이들이 나서 인터넷 한 구석에라도 찍어 올렸을 법 하지만, 인터넷 역시 고요하긴 마찬가지다. 기사 제보조차 없는 건지, 날마다 포털 메인에 톱뉴스로 'eJD'을 싸질러대는 기자들 역시 조용하기만 하다.

다른 나라가 200년 넘게 걸린 근대화와 민주화를 5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이루어낸 게 우리나라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룬 것은 근대화 민주화만이 아니었다. 지난 한 세기는 어쩌면 탈중세의 과정이기도 했다. 2천5백년 동안 이어져온 저 중화 사상의 틀에서 벗어났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수백만이 죽고 죽이는 이념의 사선을 넘기도 했다. 둘 다 공히 중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저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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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때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어느 종교의 복음서 얘기가 아니다. 중세를, 다른 생각 다른 삶의 양식을 용납치 않는 암흑 천지로 몰아간 게 유일신의 믿음이었다면, 우리가 살아온 20세기를 저 중세의 신앙 못지 않게 많은 피로 물들인 것은, 이념을 피아로 구분하는 저 이데올로기의 믿음이었다.

무지개는 늘 언덕 너머에 있다. 그럼에도 저 언덕을 넘어가면 무지개를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세를 말할 때도 우리는 자주 이같은 착시 현상에 빠지곤 한다. 중세를 암흑의 시기라 말하는 것은 그 시기가 다른 생각, 다른 삶의 양식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겪은 최근세사는 어떤가? 이때야말로 다른 생각, 다른 삶의 양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짧은 시기에 중세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지 않았던가? 헌데도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간과한다.

전철에서 '이명박 개새끼'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일종의 지위재이다. 유행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암흑기는 중세라는 물리적인 시간에 갇힌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다수가 암묵적으로 공감하고 따르는 유행이 상궤를 벗어나는 믿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기꺼이 총을 들고 나설 때에 이미 이르러 있다.




2012/04/29 16:35 2012/04/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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